GP Korea Donates 120 Watches Honoring Patriot Yun Bong-g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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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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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코리아가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에 윤봉길 의사 90주년 기념시계 120점을 기증했습니다. 기념시계의 제작 배경과 매화 문양, 장부출가생불환 각인, 김구 선생과 나눈 회중시계 일화, 농촌계몽운동부터 상하이 의거에 이른 생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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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코리아, 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 90주년 기념시계 120점 기증
The Destiny Villa - Room 717, Baegot Royal Palace Techno 1, 59-21 Seouldaehak-ro, Siheung-si, Gyeonggi-do, Republic of Korea

지피코리아, 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 90주년 기념시계 120점 기증

지피코리아가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에 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 90주년 기념시계 120점을 제작해 기증했습니다. 회중시계 1종 20점과 손목시계 2종 100점으로, 윤봉길 의사가 조국의 독립을 향해 남긴 뜻과 김구 선생에게 건넨 회중시계의 일화를 오늘의 시계 안에 새겼습니다.

기념시계의 다이얼에는 매헌을 상징하는 매화와 상하이 의거 90주년 문구가 놓였습니다. 뒷면에는 90주년 기념 로고와 윤봉길 의사가 중국으로 떠나기 전 남긴 글귀인 장부출가생불환이 새겨졌습니다.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장식처럼 사용하는 대신, 생애와 결단을 읽을 수 있는 상징을 시계의 앞뒤에 나누어 담았습니다.

2023년 2월 15일 전해진 이번 기증은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 90주년 기념사업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판매 수익금도 전액 기념사업회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운영해 추모와 역사교육을 위한 재원으로 이어지도록 했습니다.

기증 수량은 모두 120점입니다. 회중시계 20점과 금색 및 은색 손목시계 100점으로 구성됐습니다.

손목시계 전면에는 매화 문양과 상하이 의거 90주년 문구를, 뒷면에는 90주년 로고와 장부출가생불환을 담았습니다.

회중시계와 금색 및 은색 손목시계로 제작된 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 90주년 기념시계
회중시계 1종과 금색 및 은색 손목시계로 구성된 상하이 의거 90주년 기념시계

시간으로 되새긴 상하이 의거 90주년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는 한 사람의 결단이 침체돼 있던 독립운동의 국제적 위상을 바꾼 사건이었습니다. 1932년 4월 29일, 일본군의 상하이 점령 축하 행사가 열린 훙커우공원에서 의거를 일으켜 일본군 수뇌부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세계 언론은 조선 독립운동의 존재를 다시 보도했고, 중국 사회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 독립운동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된 뒤 일본 군법회의를 거쳐 그해 12월 19일 가나자와에서 순국했습니다. 만 24세, 당시 세는나이로 스물다섯이었습니다. 지피코리아 공식 페이지가 기념사업을 “영원한 25살의 청년을 기억하다”라고 이름 붙인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념시계는 영웅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기념품보다, 매일 시간을 확인할 때 이름과 뜻을 다시 마주하는 기록물에 가깝습니다. 손목시계와 회중시계라는 두 형식을 함께 택한 것도 1932년의 회중시계 일화와 오늘의 착용 문화를 잇기 위한 구성입니다.

대한독립 선언문을 들고 태극기 앞에 선 매헌 윤봉길 의사의 역사 사진
농촌계몽운동에서 독립운동으로 나아간 매헌 윤봉길 의사

농촌계몽운동에서 시작된 독립의 길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상하이 의거로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그의 청년기는 농촌의 교육과 자립을 위해 움직인 계몽운동가의 시간이었습니다. 야학을 열어 글을 가르쳤고, 농민이 현실을 이해하고 생활을 스스로 바꿀 수 있도록 농민독본을 집필했습니다.

1929년에는 부흥원에서 농촌부흥운동을 펼치고 월진회를 조직했습니다. 글을 읽는 능력만이 아니라 위생, 경제, 공동체 의식을 함께 키우려 했습니다. 나라를 잃은 현실에서 농촌이 스스로 일어서는 일이 곧 독립의 토대라는 판단이었습니다.

1930년 3월 중국으로 향하며 남긴 “장부출가생불환”은 죽음을 과시하는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고향과 가족을 뒤로하고 독립운동에 자신의 생을 걸겠다는 결의였습니다. 만주와 칭다오를 거쳐 상하이에 도착한 뒤 김구 선생이 이끌던 한인애국단에 입단했고, 그곳에서 역사에 남을 의거를 준비했습니다.

상하이 의거를 앞두고 함께 촬영한 백범 김구 선생과 매헌 윤봉길 의사
한인애국단 입단 뒤 상하이 의거를 준비한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

김구 선생과 나눈 마지막 아침

의거 당일 아침,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은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자신의 새 회중시계와 김구 선생이 지니고 있던 낡은 시계를 바꾸자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시계는 6원에 샀고 김구 선생의 것은 2원짜리였지만,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한 시간뿐이고 김구 선생은 앞으로 더 오래 살아야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두 사람은 회중시계를 맞바꿨습니다. 가격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은 남은 한 시간을 향해 떠났고, 다른 한 사람은 독립운동의 다음 시간을 이어갈 책임을 품었습니다. 김구 선생에게 남겨진 시계는 훗날 윤봉길 의사의 유품과 독립운동사의 상징이 됐습니다.

이 일화는 90주년 기념시계가 회중시계를 별도 모델로 제작한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단순히 오래된 시계 형식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두 독립운동가가 마지막으로 나눈 신뢰와 임무를 기억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상하이 의거 당일 윤봉길 의사가 김구 선생에게 건넨 6원짜리 회중시계
윤봉길 의사가 김구 선생에게 건넨 새 회중시계

여섯 원짜리 새 시계에 담긴 부탁

윤봉길 의사가 김구 선생에게 건넨 새 시계는 자신이 돌아오지 못한 뒤에도 독립운동이 계속돼야 한다는 부탁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의거의 성공 여부를 넘어 임시정부와 한인애국단의 일을 이어갈 사람에게 더 정확한 시간을 남긴 셈입니다.

그날 윤봉길 의사는 두 아들에게 남긴 글에서도 개인의 안위보다 조국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라는 문장은 가족에게 보내는 작별인 동시에 다음 세대에 건넨 당부였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의거 현장으로 떠나며 지녔던 김구 선생의 낡은 2원짜리 회중시계
윤봉길 의사가 마지막 한 시간을 위해 지니고 떠난 김구 선생의 낡은 회중시계

한 시간을 함께한 낡은 회중시계

윤봉길 의사가 받아 든 낡은 시계는 의거 현장으로 가는 마지막 시간을 가리켰습니다. 훙커우공원으로 향하는 길, 행사 시작을 기다리는 순간, 결단을 실행할 때까지 시계는 한 청년이 스스로 정한 약속의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유품으로 전해지는 회중시계는 보물로 지정돼 있습니다. 작은 금속 물건이 역사적 가치를 얻은 까닭은 희소한 재료 때문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중대한 순간을 실제로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90주년 기념사업은 그 시간을 오늘의 시계 언어로 다시 기억하게 합니다.

상하이 의거가 되살린 독립운동의 국제적 위상

훙커우공원 의거 뒤 중국의 언론과 지도층은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새롭게 평가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위축됐던 활동 기반을 추스르고 중국 사회의 지원을 확대할 계기를 얻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결단은 개인의 희생에 머물지 않고 이후 독립운동의 외교와 조직 활동을 움직인 전환점이 됐습니다.

정부는 1962년 윤봉길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습니다. 고향 예산의 충의사와 서울 효창공원 묘역, 매헌기념관을 비롯한 여러 공간에서 그의 생애와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매화 문양과 상하이 의거 90주년 문구를 담은 윤봉길 의사 기념 회중시계
20점이 제작된 상하이 의거 90주년 기념 회중시계

회중시계 20점과 손목시계 100점

지피코리아와 국내 시계 브랜드 몽시엘은 상하이 의거 90주년 기념사업을 위해 회중시계 1종과 손목시계 2종을 제작했습니다. 기증 수량은 회중시계 20점, 금색과 은색으로 나뉜 손목시계 100점입니다. 총 120점은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에 전달됐습니다.

회중시계의 흰색 다이얼에는 아라비아 숫자 인덱스와 별도의 초침 창을 배치했습니다. 1932년의 시계 형식을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당시 회중시계가 지녔던 상징을 읽기 쉬운 현대 기념시계로 옮겼습니다. 금속 체인은 시계를 소지하고 보관하던 전통적인 사용 방식을 이어갑니다.

세 모델의 다이얼에는 같은 매화 문양과 90주년 문구를 적용해 하나의 기념 컬렉션으로 묶었습니다. 회중시계는 역사적 일화를 직접 환기하고, 손목시계는 그 기억을 일상에서 착용할 수 있도록 역할을 나눴습니다.

태극기 위에 놓인 은색 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 90주년 기념 손목시계
매화 문양과 90주년 문구를 담은 은색 기념 손목시계

매화 문양과 90주년 문구

손목시계 전면의 매화는 매헌 윤봉길 의사를 상징하는 문양입니다. 추위를 견디고 가장 이른 봄에 피는 매화의 성격은 고난 속에서도 독립을 향한 뜻을 굽히지 않은 삶과 겹칩니다. 흰색 다이얼 위의 붉은 매화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 아래에 “매헌윤봉길의사 상하이의거90주년” 문구가 자리합니다.

은색 모델은 밝은 케이스와 흰색 다이얼을 연결해 기념 문구와 숫자 인덱스를 또렷하게 드러냅니다. 검은 가죽 스트랩은 장식을 절제하고 전면의 상징에 시선을 모읍니다. 날짜 창을 더해 실제 손목시계로 사용할 수 있는 기능도 갖췄습니다.

지피코리아가 공개한 손목시계 기준으로 케이스는 44mm, 글라스는 37.5mm입니다. 전체 길이 52.5mm, 두께 10mm, 스트랩 폭 22mm이며 방수 사양은 3ATM입니다. 기념의 의미와 일상 착용을 함께 고려한 크기와 구성입니다.

금색 케이스와 흰색 다이얼을 조합한 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 90주년 기념 손목시계
검은 가죽 스트랩과 금색 케이스를 조합한 90주년 기념 손목시계

금색과 은색, 기억을 담는 두 가지 표정

금색 손목시계는 케이스와 용두에 따뜻한 금속색을 입혀 오래된 기념시계의 분위기를 살렸습니다. 은색 모델과 다이얼 구성은 같지만 빛을 받는 방식과 손목 위 인상이 다릅니다. 두 모델 모두 검은 가죽 스트랩을 사용해 흰색 다이얼과 매화 문양이 중심에 남도록 했습니다.

기념시계의 가치는 희소성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누구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었는지, 어떤 문장과 상징을 선택했는지, 그 수익이 어디로 이어지는지가 함께 중요합니다. 지피코리아는 제작과 기증에 그치지 않고 판매 수익금을 기념사업회에 전액 기부해 추모사업과 역사교육으로 연결했습니다.

상하이 의거 90주년 로고와 장부출가생불환 문구가 각인된 윤봉길 의사 기념 회중시계 뒷면
90주년 로고와 장부출가생불환의 뜻을 새긴 기념시계 뒷면

장부출가생불환, 뒷면에 새긴 결의

기념시계 뒷면에는 상하이 의거 90주년 로고와 함께 “장부출가생불환”이 새겨졌습니다. 대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로, 윤봉길 의사가 1930년 중국으로 떠나며 남긴 결의입니다. 이 문장은 죽음 자체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물러서지 않겠다는 책임을 말합니다.

앞면의 매화가 윤봉길 의사의 이름과 생애를 상징한다면, 뒷면의 문장은 그 생애를 움직인 각오를 전합니다. 시계를 착용하거나 회중시계를 꺼내는 순간마다 앞뒤의 의미가 차례로 이어지도록 설계됐습니다.

숭고한 정신을 다음 시간으로 잇는 시계

윤봉길 의사는 농촌의 청년과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교육자였고, 공동체의 자립을 준비한 계몽운동가였으며, 독립운동의 국제적 전환점을 만든 한인애국단원이었습니다. 상하이 의거만으로 그의 삶을 한 장면에 가두기보다 그 결단에 이르기까지의 시간 전체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90주년 기념시계 120점은 그 시간을 손목과 주머니 가까이에 남겼습니다.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동안 이름과 문장도 함께 이어집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스물다섯 청춘을 바친 윤봉길 의사의 숭고한 정신을 다음 세대의 시간으로 전하는 기념사업입니다.

GP Korea Donates 120 Watches Honoring Patriot Yun Bong-gil

GP Korea has produced and donated 120 watches to the Maehun Yun Bong-gil Memorial Association to commemorate the 90th anniversary of the Shanghai Hongkou Park operation. The collection consists of 20 pocket watches and 100 wristwatches in gold- and silver-tone cases. Its design connects Yun's life, his final exchange of watches with Kim Gu and the historic act of April 29, 1932.

A plum blossom representing Maehun appears on the dial above wording for the 90th anniversary. The caseback carries the anniversary emblem and the phrase “Jangbu Chulga Saengbulhwan,” the resolve Yun wrote before leaving Korea: a man who departs with a great purpose does not expect to return alive.

The donation announced on February 15, 2023 extends the anniversary project beyond the manufacture of a commemorative object. Proceeds from sales were also directed in full to the memorial association, linking each watch to remembrance, historical education and the continuing work of honoring Yun Bong-gil.

Ninety Years After The Hongkou Park Operation

Yun Bong-gil's action in Shanghai transformed the international standing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On April 29, 1932, he struck the Japanese military leadership during a ceremony at Hongkou Park. Newspapers outside Korea once again reported the determination of the Korean resistance, and support for th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expanded within Chinese society.

Yun was arrested at the scene, tried by a Japanese military court and executed in Kanazawa on December 19, 1932. He was 24 by international age and 25 under the Korean age convention used at the time. GP Korea's memorial page therefore remembers him as “the forever 25-year-old young man.”

The commemorative watches do not treat that young life as decoration. A pocket watch recalls the object that accompanied his final morning, while the wristwatch brings his name and resolve into daily life. Together they connect the historical event with the ordinary act of checking the time.

An Educator Before He Became A Martyr

Yun Bong-gil was born in Yesan, Chungcheongnam-do, on June 21, 1908. His public life began not with a bomb but with education. He organized night classes, taught rural children and wrote the Nongmin Dokbon so farmers could read their circumstances, improve daily life and build an independent community.

He led a rural revival movement at Buheungwon and organized the Woljinhoe association in 1929. Literacy, public health, economic self-reliance and cooperation were inseparable in his work. Yun believed that a nation deprived of sovereignty still needed communities capable of standing on their own.

In March 1930, he left Korea after writing “Jangbu Chulga Saengbulhwan.” He travelled through Manchuria and Qingdao before reaching Shanghai, where he joined the Korean Patriotic Corps led by Kim Gu. The decision at Hongkou Park was rooted in the years he had already spent educating and organizing others.

The Final Morning With Kim Gu

On the morning of the operation, Yun and Kim Gu ate together. Yun proposed exchanging pocket watches. His newer watch had cost six won, while Kim's worn watch was worth two. Yun explained that he had only one hour left, whereas Kim needed to live longer and continue the independence movement.

The exchange turned two ordinary timepieces into historical witnesses. Yun left with Kim's old watch for the final hour. Kim retained Yun's newer watch and the responsibility of carrying the movement forward. The surviving watch later became one of the most resonant artifacts associated with both men.

Yun's farewell message to his two sons carried the same sense of duty. He asked them, if they had blood and bone, to become brave fighters for Korea. It was a private goodbye written with the future of the country in mind.

From One Historic Pocket Watch To A Memorial Collection

GP Korea and the Korean watch brand Monciel created one pocket-watch model and two wristwatch versions for the anniversary project. Twenty pocket watches and one hundred gold- and silver-tone wristwatches were donated, for a total of 120 pieces.

The pocket watch uses a white dial, Arabic numerals and a separate seconds display. It is not presented as an exact replica of the 1932 artifact. Instead, its chain, form and dial translate the meaning of the watch exchange into a contemporary commemorative object.

All three models share the plum blossom and the anniversary inscription. The pocket watch addresses the history directly, while the wristwatch allows that memory to remain close in everyday life.

The Plum Blossom On The Dial

The plum blossom is associated with Maehun Yun Bong-gil. It blooms through the cold before spring, an image that echoes a life that refused to surrender its purpose under colonial rule. The red blossom is placed above the anniversary wording, giving the otherwise restrained white dial a clear symbolic center.

The silver-tone wristwatch joins a bright metal case to a black leather strap. The gold-tone version gives the same dial a warmer, more traditional appearance. Both use a date window and familiar Arabic numerals so the watch remains practical rather than becoming a display-only keepsake.

GP Korea lists the wristwatch at 44mm across the case, with a 37.5mm crystal, 52.5mm overall length, 10mm thickness, a 22mm strap and 3ATM water resistance. Those dimensions balance the visibility of the memorial dial with ordinary wristwatch use.

The Resolve Engraved On The Caseback

The caseback carries the 90th-anniversary emblem and “Jangbu Chulga Saengbulhwan.” Yun wrote the phrase before leaving home for China in 1930. It is not a celebration of death. It records his determination to accept personal sacrifice and refuse retreat until Korea regained its freedom.

The plum blossom on the front identifies the person being remembered. The phrase on the back reveals the resolve that shaped his life. Reading both sides turns the watch from a decorated object into a compact record of character, action and responsibility.

Passing A Sacred Memory Into The Next Time

Yun Bong-gil was a rural educator, a community organizer and a member of the Korean Patriotic Corps whose action changed the course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Remembering only the moment at Hongkou Park would leave out the education, discipline and public responsibility that led him there.

The 120 commemorative watches preserve that fuller history in an object made to measure time. Each movement of the hands carries a name, a sentence and a promise into another day. The project honors the young life Yun gave for Korean independence and places its meaning within reach of the generations that followed.

추가 정보

90주년 기념시계 기증 소식

지피코리아는 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 90주년 기념사업을 위해 회중시계 20점과 손목시계 100점을 제작해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에 기증했습니다. 손목시계는 금색과 은색 두 종류이며, 세 모델 모두 매화 문양과 90주년 문구를 공유합니다.

기념시계 판매 수익금은 전액 기념사업회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운영됐습니다. 제작과 판매가 추모사업, 역사교육과 기념관 활동을 뒷받침하도록 연결한 사업입니다.

윤봉길 의사 생애 연표

  •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습니다.
  • 1920년대 후반 야학과 농촌계몽운동을 펼치고 농민독본을 집필했습니다.
  • 1929년 월진회를 조직해 교육, 위생과 농촌 자립운동을 이어갔습니다.
  • 1930년 장부출가생불환을 남기고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 1932년 김구 선생이 이끈 한인애국단에 입단했습니다.
  •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의거를 일으켰습니다.
  • 1932년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에서 순국했습니다.
  •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습니다.

기념시계의 세 가지 구성

회중시계

회중시계는 20점이 제작됐습니다.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이 의거 당일 아침 서로의 시계를 바꾼 일화를 기념하며, 흰색 다이얼과 아라비아 숫자 및 별도 초침 창을 갖췄습니다.

은색 손목시계

밝은 금속 케이스와 흰색 다이얼, 검은 가죽 스트랩을 조합했습니다. 붉은 매화와 상하이 의거 90주년 문구가 전면의 중심을 이룹니다.

금색 손목시계

금색 케이스가 기념시계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강조합니다. 은색 모델과 동일한 다이얼 구성을 사용해 두 손목시계를 하나의 컬렉션으로 묶었습니다.

손목시계 공개 사양

  • 케이스 크기: 44mm
  • 글라스 지름: 37.5mm
  • 전체 길이: 52.5mm
  • 두께: 10mm
  • 스트랩 폭: 22mm
  • 방수 사양: 3ATM

기념시계에 담긴 상징

매화

매헌 윤봉길 의사를 상징하는 문양입니다. 추위를 견디고 이른 봄에 피는 매화는 식민지의 엄혹한 현실에서도 독립의 뜻을 굽히지 않은 삶을 상징합니다.

장부출가생불환

윤봉길 의사가 1930년 중국으로 떠나며 남긴 글귀입니다. 뜻을 품고 고향을 나선 이상 조국의 독립을 이루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의를 담고 있습니다.

회중시계

1932년 4월 29일 아침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이 서로의 시계를 바꾼 일화를 상징합니다. 남은 한 시간과 독립운동의 다음 시간을 서로에게 맡긴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기념시계는 모두 몇 점이 제작됐나요?

기증 수량은 총 120점입니다. 회중시계 1종 20점과 금색 및 은색 손목시계 2종 100점으로 구성됐습니다.

왜 회중시계가 포함됐나요?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이 상하이 의거 당일 아침 회중시계를 맞바꾼 일화를 기리기 위해서입니다. 윤봉길 의사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한 시간뿐이라며 새 시계를 김구 선생에게 건넸습니다.

다이얼의 매화는 무엇을 뜻하나요?

매화는 매헌 윤봉길 의사를 상징합니다. 추위를 이기고 피어나는 성격이 고난 속에서도 독립의 뜻을 지킨 삶과 맞닿아 있습니다.

장부출가생불환은 어떤 의미인가요?

대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윤봉길 의사가 1930년 중국으로 떠나며 독립운동에 생을 걸겠다는 각오로 남겼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언제 상하이 의거를 일으켰나요?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의거를 일으켰습니다. 일본군 수뇌부에 큰 타격을 주었고 한국 독립운동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됐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나이는 몇 살이었나요?

1908년 6월 21일 태어나 1932년 12월 19일 순국했습니다. 만 24세였으며 당시 세는나이로는 스물다섯이었습니다.

상하이 의거 이전에는 어떤 활동을 했나요?

고향 예산에서 야학을 열고 농민독본을 집필했으며 월진회를 조직해 농촌계몽운동을 펼쳤습니다. 교육과 공동체 자립을 독립의 토대로 보았습니다.

기념시계 수익금은 어디에 사용됐나요?

지피코리아 공식 안내에 따르면 판매 수익금은 전액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에 기부됐습니다. 추모와 역사교육을 이어가기 위한 기념사업에 연결됐습니다.

기념사업과 시계 정보

기념시계의 제작 취지와 공식 이미지는 지피코리아 윤봉길 의사 기념시계 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퍼슬랏의 다른 소식은 퍼슬랏 뉴스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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